#저자가 책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하게 되면 사랑하는 존재에 작은 것 하나하나에도 신경을 쓰게 되고, 작은 그 하나가 왜 나에게 큰 의미가 되는지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저자가 책을 정말로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독서가 가진 여러 면모에 대해서 주절주절 알려주는 저자를 보고 있으면 나도 한 때 독서를 좋아했던 시절이 떠오르면서 입가에 미소가 걸리게 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정말로 '독서의 기쁨'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면 새삼 '독서'라는 단어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이 책을 다 읽기 전까지 독서라 함은 종이로 된 책에 인쇄된 활자를 읽어가는 것이고, 이것을 통해 우리는 경험하지 못한 것들을 간접적으로 경험하는 행위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독서는 글자만 읽는 것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좀 더 넓고 다양한 경험으로 나에게 존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린 나이여서 상관이 없었던 건지, 이제 막 활자들이 친숙해져 신이 났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책들도 거리낌없이 꺼내어 읽곤 했다. 무슨 말인지는 몰랐다. 그게 뭐가 중요하겠는가. 글자를 읽고 있는데! 모든 것이 거대해보이는 나이에 마주섰던 책장은 이를테면 보물상자나 마법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 같았다. 이 작은 공간에 온갖 이야기가 들어있을 수 있다니."
독서의 기쁨 中
#독서는 책 표지로 시작해 책장으로 끝난다.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 나에게도 독서는 여러 단계에 걸친 아주 복잡하고도 섬세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단계를 크게 구분해보면 1) 책을 내 손에 가져오는 것 2) 책을 읽는 것 3) 다 읽은 책을 보관하는 것. 이런 일련의 행위가 끝이 나야 비로소 독서를 했다는 만족감이 든다. 만약 단계를 차근차근 밝아나가지 못하게 되면 그 책에 대한 흥미를 잃게 되고, 독서는 의무로 남게 되면서 한 장을 넘기는 것이 너무나 버거워지는 지경에 이르게 된다. 그러니 첫 시작부터 내 맘에 들어야 나는 책의 첫 장을 열어볼 마음이 생겼던 것이다.
독서의 첫 시작은 내가 읽을 책을 만나는 것이고, 도서관이든 서점이든 그 시작은 책 제목과 표지에 의해 결정된다. 나는 책을 읽으며 머리가 아프고 싶지 않은 사람이기에 읽을 책을 고르면서도 오로지 내 마음에 드는 책에 먼저 손이 가게 된다. 물론 이 시작이 100% 좋은 결말로 이어지지 않지만 그래도 나는 이 시작을 버리지 못했다. 그래서일까 독서의 범위에 표지를 포함시키는 저자를 모습에 격하게 공감이 되었다.
"이를테면 책이 존재의 부질없음을 논하는 내용이라면 그만큼 가볍게 구겨질 수 있는 책. 우울이 뼛속까지 파고든다면 뼈대가 드러나는 책. 실현되지 않을 상상이겠지만 만약 소실된 책을 다루는 책이 바람에 풍화되는 종이로 되어있다면, 나는 정말 돌아버릴 것 같은 짜릿한 기분으로 그 책을 사서 바람에 날려보낼 준비가 되어있다. 그런 의미에서 책을 사랑해온 사람이 책에 대해 논하는 이 책은 아주 튼튼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해야겠다. 책장에서 끈질기게 살아남되, 다른 책들보다 먼저 눈에 띄지 않고, 다른 책들을 단단히 뒷받침해주는 책으로 만들어달라고. 물론 표지는 예뻐야 한다. 여러분이 어떤 표지와 질감으로 된 책을 들고 있을지 정말 궁금하다."
독서의 기쁨 中
이렇듯 독서가 단순히 눈으로 보고 머리로 입력하는 '공부'의 느낌을 벗어나 우리가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오감의 행동이었다는 점을 깨우치게 되었다. 나는 그동안 '독서'라는 단어가 지닌 예의바르고 모범적인 이미지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 같다. 내가 한창 즐겁게 독서를 했던 시절을 돌이켜보면 그때의 독서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바꿔주고, 나에 대해 깊이 있게 돌아보는 경험을 선사했었다. 책은 작가가 만들어내는 작은 세계이며, 우리는 책을 읽음으로써 그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저자의 말처럼 활자의 조합을 통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며, 그 속에서 우리는 때로는 좋은 경험을 때로는 지루한 경험을 하기도 하는 것이다.
"인간이 남기는 것 한 권의 책에서 우리는 무한대에 가까운 활자의 조합을 만들어낼 수 있다. 가장 깊은 바다에서 가장 넓은 우주까지, 아주 오래된 신화부터 아주 최근의 르포까지, 우리는 직접 헤엄을 치거나 타임머신에 타지 않고도 실감나게 체험할 수 있다. 이건 VR이나 영상과는 다른 차원의 체험이다. 작가의 머릿속에서 시작된 글자들은 그 조합 자체로 새로운 의미를 지니며 무한히 다른 해석을 낳는 하나의 세계가 된다. 그래서 책이 가득한 책장을 바라보는 순간 우리는 어떤 경이에 사로잡힌다. 이 서로 다른 세계가 한 자리에 모여있다는 아득함,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는 안정감, 언제든 손을 뻗어 펼칠 수 있다는 승리감, 이 도취가 우리를 이끈다."
독서의 기쁨 中
독서를 끝내고 현실로 돌아오게 되면 우리는 이 책을 도서관에 반납하거나 책장에 꽂아두거나 중고로 판매해버린다. 요즘은 전자책이 발달되어 책을 읽고 나면 그 뒤에 더 해야 되는 행동이 없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독서의 경험을 기억하고자 한다면 나는 이 책을 읽었다는 증거를 반드시 보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것의 가장 기본적인 형태는 책장일 것이다.
가끔 다른 사람의 책장에서 내가 읽은 책을 발견하면 뭔가 뿌듯함이 느껴지는 동시에 그 책이 나에게 어떤 내용으로 남아 있는지 생각하게 된다. 책장에 꽂힌 책을 보는 것으로 그 책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할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책장에 꽂힌 책들을 한 번 둘러보는 것으로도 우리는 짧게 나마 독서 여행을 할 수가 있다. 이 경험은 우리에게 책에 대한 기억을 상기하게 만들면서 더 오랫동안 책을 기억할 수 있게 만든다.
"책장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은 그 사람의 관심 분야가 책장에 반영된다는 말이기도 하지만, 그 사람의 머릿속이 책장에 꽂힌 책과 점점 닮아간다는 말이기도 하다. 앞서 말했듯 책을 소유한다는 것은 언제든 책에게 정신을 침범당해도 좋다는 인정이다"
독서의 기쁨 中
"책은 소유할 때만 연결할 수 있다 책을 읽고 처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다른 책을 읽을 때 연결지어 생각할 일이 잦기 때문이다. 가끔 하던 일을 멈추고 가만히 책장을 바라본다. 책등을 하나하나 살피며 내가 무엇을 기억하는지,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를 반추해본다. 모든 책의 내용을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각각의 감정은 대체로 기억하고 있다. 업데이트를 하고 싶으면 다시 읽어본다. 그런 게 아니라면 머릿속으로 대강의 범주를 가늠한다. 메마르고 건조한 책, 씁쓸한 책, 액자식 구성으로 된 책, 슬픈 책, 각주가 많은 책, 단편집, 비슷한 문체의 두 책 등등. 그렇게 기억하고 있는 책은 나중에 필요한 순간 불현듯 떠오른다. 이 책을 쓰는 데에도 많은 책의 도움이 있었다. 쓰다 말고 다른 책을 참고하고, 잊고 있었던 책의 기억을 되살려냈다."
독서의 기쁨 中
# 다시 독서를?
예전부터 그랬지만 한 권의 책을 다 읽으면 다른 책을 더 열심히 읽고 싶다는 활화산 같은 강렬한 욕망에 사로잡혔지만 끝내 실천으로 이어진 경험은 적다. 다시 무슨 책을 읽을 지 선정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되는데, 결국은 내 마음에 드는 책을 찾을 때까지 독서가 보류되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보면 독성에 대한 마음이 늘 식기 마련이다. 그래서 한 때는 지인에게 추천을 받아 그 중에서 마음에 드는 책을 읽어보기도 했고, 어떤 때는 책에 언급된 책을 찾아서 읽어보는 독서를 해보기도 했다.
그럼에도 시간이 지날수록 독서를 안 하게 된 것이 팩트이다. 핑계는 많고 다른 사람의 핑계와 큰 차이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 드는 생각은 독서를 통해서 내가 가진 밑천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것이다. 일을 하면서, 나이를 먹어가면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이 너무나 좁아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내 사진도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 기분이다. 늘 아쉬웠던 것들, 못했던 것들에 대한 기억을 붙잡고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숨이 턱턱 막히는 답답한 일상이다. 그럼에도 돈이 없기에 어디로든 휙 여행을 떠나서 잠시나마 나의 일상을 잊을 수도 없고, 그렇게 잊고 지내더라도 결국은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것을 자각하는 순간 스트레스가 더욱 폭발하기에 이것 역시 답이 아니라 생각했다.
그러다 이 책을 읽게 되면서 지난 날의 나를 돌아봤다. 취준생 시절 그래도 취미가 독서라 말을 꺼낼 수 있을 정도로 책은 읽었고, 면접비라도 받은 날이면 햄버거 셋트 하나 사먹고 남은 돈으로 무슨 책을 사볼까 책방을 기웃거리던 나였다. 취업이 되고도 내가 보고 싶은 책들을 내 돈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었고,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재미있게 읽었던 책을 한 권 정도 추천해 줄 수도 있었던 삶이었다. 책을 읽음으로서 내 삶에 기쁨이 있던 시간이었다.
지금 다시 그 시절과 같이 독서를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우선 시간이 없고(?), 살아가는 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에 독서에 대해 이전처럼 열정을 낼 수는 없다고 느끼고 있다. 그럼에도 독서를 하는 동안 온전히 책에 몰두하는 그 시간의 강렬함을 다시 느껴보고 싶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나를 좀 더 내면적으로 키울 수 있는 책 아니면 내가 받아들여야 하는 세상을 좀 더 이해할 수 있고 유연하게 받아들이도록 하는 책. 이런 책이 지금 필요하다. 여기서 다시 독서를 출발해 보려고 한다. 실패할 수도 있다. 80%의 높은 확률로 확신한다. 그럼에도 20%를 안 버리면 언젠가 또 좋은 책을 만나게 될테니 다시 독서를 시작해보다. 중꺽마의 심정으로!
"타인의 삶을 살아보는 것은 언어로 세상을 여행하는 독자들의 또 다른 특권이다. 그 누가 이들에게 ‘책밖에 모르는 바보’라고 할 텐가? 나는 ‘직접 살기 위해 책을 읽지 않는다’는 말을 믿지 않는다. 진정으로 직접 살기 위해서는 책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책을 살아본 이들이 세상의 수많은 삶을 이해할 수 있으리라. 독자는 여행자로도, 은둔자로도, 바보로도 비유되어 왔지만 나는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이 자신에게 주어진 암호문 같은 책을 읽어내는 독자들이자, 새로운 책을 써내는 작가들이라고 생각한다. 때로는 다른 이의 책에 몇 마디를 보태고, 페이지를 찢고, 자신의 책에 드문드문 적힌 힌트를 두고 머리를 싸매고, 그 아래에 자신의 풀이를 적어나가는 이들, 그중에서도 종이로 된 책을 펼쳐놓고 자신의 삶에 옮겨적을 글줄을 찾아 헤매는 현실의 독자들에게 반가움과 동지애를 표하고 싶다. “삶이 있으라.” 말하니 책이 쓰이고 독자들이 보기에 좋았더라."
독서의 기쁨 中
"책은 유일하게 우리가 두 번 이상 살 수 있는 세상이다. 활자는 시간에 귀속되지 않기 때문이다. 앞서 차마 헤아리지 못했던 의미를 뒤에 가서 깨달을 수도 있고, 그 깨달음을 가지고 다시 한 번 앞에서부터 살아볼 수도 있다. 세상의 의미를 앞장 뒷장 넘겨가며 재구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가 인생에서 겪는 우울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를 꼽는다면 그것은 ‘회한’일 것이다. 삶을 돌이킬 수 없다는 상실감, 저지른 일을 쓸어 담을 수 없다는 패배감, 지금에 와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함, 그리고 모든 결과를 책임지고서라도 계속 살아나가지 않을 수는 없다는 아득함, 이 모두가 한데 얽힌 회한은 시간에 귀속된 인간의 가장 큰 약점이다. 영원한 신은 이런 감정을 결코 겪지 않으나 태어나 죽는 방향만이 허락된 인간은 이 약점을 피해갈 수 없다. 그것이 《바벨의 도서관》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만의 예언서를 찾으러 떠난 이유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아주 가끔, 책을 여러 번 읽음으로써 같은 삶을 여러 번 체험할 수 있다. 책의 내용을 바꿀 수는 없으나 적어도 앞으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는 알 수 있다. 등장인물의 미래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특권인가. 그 순간만큼은, 우리는 같은 삶을 여러 번 체험하는 동시에 신의 관점에서 등장인물을 바라볼 수 있다."
독서의 기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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